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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라의 기자수첩 - 양날의 검 ‘경조증’

기사승인 2019.09.25  09: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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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시 라 기자 /기동취재팀장

임상심리사

한국정신건강방송ANN

40대 남성 A씨는 작년 ‘대박 날 아이템’이 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6개월 만에 사업을 접게 되었고 빌린 돈은 신용카드 돌려 막기를 통해 갚고 있다. A씨가 이런 식으로 사업을 시도해본 것이 20대부터 총 10회가 넘는다고 한다. 물론 매번 실패를 했던 것은 아니다. 5년 전에는 A씨 특유의 밝은 성격과 영업력으로 큰 계약을 따내 사업을 어느 정도 키웠다. 더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 무리하게 확장을 시도하다가 2년 만에 본전으로 돌아왔다. 현재에도 그는 언젠가는 사업에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또 다른 아이템을 찾고 있다.

 

A씨의 행동은 대표적으로 ‘경조증(輕躁症·hypomania)’이라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가벼운 조(躁) 증 상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의 현 상황과는 맞지 않게 기분이 들떠서 의기양양한 기세를 보이며 자신이 위대한 인물이 된 것 같이 느낀다. A씨가 끊임없이 사업을 시도하고 그때마다 ‘대박 아이템’이라 외치는 것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큰 자부심과 믿음을 가지고 목적지향적인 행동을 보인다. 또한 고양된 기분으로 인해 하루 3시간만 자도 충분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으며 말을 많이 한다. 어떤 일에 빠지면 지나치게 몰두하는데 주로 현실적이지 않은 것에 집중하지만 다 잘 될 거라는 핑크빛 미래를 그린다. 자신감이 넘쳐 과도하게 빚을 내 투자를 하거나 물건을 사는데 돈을 흥청망청 쓰기도 한다.

 

이들이 몰두하는 일들은 주로 고통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들이 사회적으로 뚜렷하게 손상을 일으킬 정도로 두드러지지 않아서 본인과 가족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흔하다. 지인들은 이들을 보고 ‘흥부자’, ‘긍정맨’, ‘에너자이저’, ‘아이디어 뱅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과잉된 에너지로 늘 긍정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자기애가 높아 함께 있으면 즐겁고 또 믿음직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늘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다.

 

항상 기분 좋고 에너지가 넘치는 경조증 상태라면 그래도 스스로는 인생이 즐겁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경조증만을 단독으로 겪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상승이 있으면 하락도 있다. 과잉된 에너지는 급작스럽게 고갈되고 우울증으로 변한다. 이처럼 우울증과 경조증 상태가 주기적으로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것을 ‘제2형 양극성 장애’라고 칭한다.

 

경조증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대부분 우울증이 동반되는 양극성 장애(조울증) 환자인 경우가 많다. 이들이 겪는 우울증은 단순한 답답함이나 무기력 등으로 미세하게 오는 경우가 흔해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러나 급격한 감정의 변화로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는 환자의 자살 시도율이 25% 정도에 육박할 정도로 위험한 질환이다. 이는 우울증 환자들의 자살률보다 약 10%나 높은 수치인데, 평소에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감정이 극단으로 하락하기 때문이다. 경조증 상태에서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도 지인들도 질환의 유무를 모를 수밖에 없다.

 

다행히 하락이 있다면 상승은 또다시 온다. 경조증은 앞서 말한 것처럼 부정적인 결과만을 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잘 활용되어 큰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감정기복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떠올리지 못하는 예술적인 영감을 떠올리고 표현해내 유명한 예술가가 되거나 사업적으로 성공을 할 수도 있다. 예로서 ‘노인과 바다’로 미국의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헤밍웨이, 그리고 반 고흐와 톨스토이 또한 양극성 장애를 앓았다고 한다. 기분이 고양된 상태에서 받은 영감과 예술적 감성이 조화되어 역사적인 작품들이 탄생한 것이다.

 

또한 경조증은 사업적으로 잘 발휘되면 긍정적인 성취를 가져오기도 한다. 존스 홉킨스대 의대 정신과 교수인 존 가트너는 <조증-성공한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기질>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성공한 기업가들이 경조증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IT 기업의 CEO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부분의 CEO에게서 경조증 기질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용기와 끊임없는 도전, 낙천성이 이들의 성공을 만들어 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들에게도 우울증 시기가 찾아오면 자살시도나 사업실패 등 위험한 결과가 찾아올 수 있다. 성공하려면 미쳐야 한다는 말처럼 성공의 대가는 혹독하다.

 

경조증 증상이 긍정적으로만 발휘되어 유명한 예술가나 CEO가 계속 탄생하면 좋겠지만 이러한 경우는 극히 일부이다.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선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 원인이 불분명한 질환이기 때문에 자신이나 지인이 경조증 혹은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즉시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저절로 치료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극단의 감정을 평생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헌태 kimht2209@naver.com

<저작권자 © 한국정신건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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